- 코스피·코스닥에 사상 처음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걸렸고, 이틀 새 시가총액 921조 원이 증발했다. "많이 빠졌으니 오르겠지"는 근거가 아니라 희망이다.
- 바닥은 예측이 아니라 '확인'하는 것. 교과서 신호 3개(① 매도 에너지 소진 ② 밸류에이션 ③ 시간·횡보)는 아직 켜지지 않았다.
- 다만 AI·반도체 장세만의 신호인 빅테크 CAPEX(설비투자)는 오히려 상향 — 수요는 살아있다. 단, 빅테크 잉여현금흐름이 마르면 삼성전자·SK하이닉스도 박스권에 갇힐 수 있다.
계좌를 열었다가 그냥 닫았다. 온통 파랗다.
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. 코스피와 코스닥에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걸렸고, 삼성전자·SK하이닉스에 물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. 그리고 어김없이 이 말이 나온다. "이렇게 크게 빠졌으니 이제 오르겠지."
'많이 빠졌으니 오른다'가 위험한 이유

먼저 숫자부터 보자. 7월 28일과 29일, 딱 이틀 사이에 시가총액 921조 원이 사라졌다. 코스피는 이틀째 5%대 급락, 코스닥도 6%대로 무너졌다.
이런 장에서 "많이 빠졌으니 오른다"는 건 근거가 아니라 희망이다. 가격이 싸 보인다는 느낌과, 실제로 팔 사람이 다 팔았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. 그래서 바닥은 느낌이 아니라 신호로 확인해야 한다. 하나씩 보자.
신호 ① 매도 에너지가 다 소진됐는가
바닥의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'투매'다. 손실을 확정 짓고 던지는 물량이 다 나와야 반등할 힘이 생긴다.
이걸 확인하는 계기판이 빚투 지표다. 쉽게 말해, 빌린 돈으로 산 주식이 강제로 청산되는 '반대매매'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는 거다. 과거 급락기마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이 5%를 넘으면 본격적인 패닉셀로 번졌고, 거꾸로 신용융자 잔고가 확 줄고 반대매매가 잦아들면 "강제로 팔릴 물량은 다 나왔다"는 신호로 읽힌다.
그럼 지금은 어떤가. 급락 직전인 7월 27일 기준 신용융자 잔액이 32조 7천억 원에 달했고, 폭락 전부터 이미 반대매매가 직전 거래일의 3배 이상으로 불어난 상태였다. 빚으로 산 물량이 아직 시장에 쌓여있고, 지금도 강제 청산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.
정리하면 매도 에너지가 '소진되는 과정'에 있는 거지, 소진이 끝난 게 아니다. 첫 번째 신호는 아직 켜지지 않았다.
신호 ②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바닥권인가
두 번째는 가격이 정말 싼지, 즉 밸류에이션이다. 지수 숫자 말고 '자산 대비 가격'인 PBR을 본다.
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역사적 저점을 PBR 0.8배 안팎으로 봐 왔다. 이 밑으로 내려간 건 코로나가 터진 2020년 3월 정도였다. 그런데 이번 폭락에도 코스피 PBR은 7월 29일 기준 1.62배 수준이다.
급락으로 가격 부담은 덜었지만, 역사적 바닥권과는 아직 거리가 꽤 있다는 얘기다. 이 잣대로도 "밸류에이션 바닥"이라고 보긴 어렵다.
신호 ③ 시간을 두고 '바닥 다지기'를 했는가
세 번째는 시간이다. 진짜 바닥은 뾰족한 V자보다, 낙폭이 줄면서 지수가 일정 구간에서 길게 옆으로 기는 '바닥 다지기'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.
악재가 나와도 더 안 빠지고, 거래량이 줄면서 손바뀜이 끝나가는 구간이다. 그런데 지금은 이틀 연속 폭락이 워낙 강하게 나온 직후라, 이런 기간 조정을 확인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.
여기까지 교과서적인 신호 셋을 보면, 지금은 바닥을 다지는 '중'이지 다 치고 오를 일만 남았다고 보긴 섣부르다.
신호 ④ (AI·반도체 장세 전용) 빅테크가 지갑을 닫는가
그런데 지금 우리 시장은 결국 AI와 반도체가 끌고 간다. 이 장세에는 교과서에 없는 신호가 하나 더 있다. 바로 미국 빅테크의 CAPEX(설비투자) 가이던스다.
원리는 간단하다. 삼성전자·SK하이닉스의 이익은 결국 미국 빅테크가 AI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돈에서 나온다. 그러니 빅테크가 투자를 더 늘리면 우리 반도체의 이익 전망은 살아있는 거고, 반대로 빅테크가 투자 축소를 입에 올리기 시작하면 주가가 아무리 싸 보여도 더 내려갈 바닥이 남은 거다.
마침 이번 주가 실적 시즌이었다. 결과는 이렇다. 알파벳은 올해 연간 CAPEX 가이던스를 1,800억~1,900억 달러에서 1,950억~2,050억 달러로 높였고, 메타도 전망 하단을 1,250억 달러에서 1,300억 달러로 올렸다. 마이크로소프트는 2분기 CAPEX가 41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70% 넘게 늘었고, 다음 분기엔 500억 달러 이상을 예고했다.
메모리 최대 고객 중에 투자를 줄이겠다고 말한 곳은 한 곳도 없다. 즉 이익의 원천인 수요는 살아있고, 이번 폭락은 수요가 무너진 게 아니라 심리와 수급이 만든 하락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. 이 잣대로만 보면 바닥이 형성될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.
딱 하나, 이건 경계해야 한다 — 잉여현금흐름
다만 마냥 안심하긴 이르다. 주의할 지표가 하나 있다. 바로 잉여현금흐름, 회사가 쓰고 남은 진짜 현금이다.
메타는 투자가 급증하면서 잉여현금흐름이 1년 전 85억 5천만 달러에서 7억 8천만 달러로 90% 넘게 줄었고, 알파벳은 분기 잉여현금흐름이 아예 적자로 돌아섰다. 지금이야 CAPEX를 늘려 잡고 있지만, AI 투자가 눈에 보이는 이익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실탄인 현금이 말라 앞으로는 투자를 더 못 늘린다는 뜻이다.
그렇게 되면 수요 성장에 대한 기대가 멈추면서, 삼성전자·SK하이닉스 주가도 이 수준의 박스권에 갇힐 수 있다. 오르더라도 예전처럼 크게는 못 오른다는 얘기다.
그래서, 바닥은 맞히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다
정리하면 이렇다. 교과서 신호 셋(매도 소진·밸류에이션·시간)은 아직 켜지지 않았고, AI 장세 특유의 신호 하나(빅테크 수요)만 파란불이다. 지금은 바닥을 '다지는 중'이지, 바닥을 '친' 게 아니다.
그래서 나는 "많이 빠졌으니 몰빵"이라는 유혹을 접었다. 대신 이 신호들이 하나씩 켜지는지를 확인하면서 대응하려 한다. 잃지 않는 게 먼저다. 한 번에 다 담기보다 나눠서, 신호가 확인되는 만큼 담는 게 이런 장에서 버티는 방법이 아닐까.
바닥은 예측해서 맞히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, 신호를 확인하고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자리다. 여러분도 오늘 계좌를 보며 조급해지기 전에, 이 4가지 신호부터 차분히 점검해보시길.
자주 묻는 질문
지금이 주식 바닥인가요?
반대매매·신용융자로 바닥을 어떻게 판단하나요?
삼성전자·SK하이닉스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나요?
참고 자료
- KBS 잇슈머니 — '주가 바닥 읽는 법' (매도 소진·밸류에이션·시간·빅테크 CAPEX)
- 파이낸셜뉴스 — '패닉셀' 이틀 새 시총 921조 증발…사상 첫 양시장 연속 서킷브레이커
- ZDNet Korea — AI 투자 경쟁 가속…MS 웃고 구글·메타 울고 (빅테크 CAPEX·잉여현금흐름)
(이 글은 개인의 의견과 공개된 보도를 정리한 것으로, 특정 종목·통화의 투자를 권유하는 글이 아닙니다.)
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