한 달 전 금값이 무너졌을 때, 나는 안 팔기로 했다.

그때 순금 한 돈이 80만원대였다.
110만원을 넘보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
그런데 이번 주 초에 한국은행이 금을 사기 시작한다는 얘기였다. 그것도 13년 만에
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.
"나라가 사면, 지금이 바닥이라는 뜻인가?"
그래서 한은 발표를 직접 찾아봤다.
확인해보니 방송에서 안 짚고 넘어간 게 세 개 있었다
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"중앙은행이 샀으니 나도"라는 생각이 왜 위험한지, 장롱 속 금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정리될거다
한은이 13년을 쉰 이유

한은은 2011년에 40톤, 2012년에 30톤, 2013년에 20톤을 샀다. 총 90톤이다
그리고 직후에 금값이 무너졌다.
"고점에 샀다"는 비판이 쏟아졌고, 그 뒤로 13년간 실물 금을 한 돈도 사지 않았다
보유량은 104.4톤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
이 대목에서 좀 뜨끔했다.
한 번 크게 물리고 나면 그 자산 자체를 안 쳐다보게 되는 것, 나도 똑같이 해봤다
기관이든 개인이든 손실보다 무서운 건 손실의 기억인 것 같다
그 13년을 깬 게 이번 발표다
첫째,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
한은은 매입 물량도, 시기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.
언론이 전망하는 규모는 연평균 5톤 안팎이다
사 오는 곳도 정해져 있다.
국내 금 제련사인 고려아연과 LS MnM이 아연·구리를 정련하면서 연 40~45톤을 부산물로 만드는데, 그중 수출로 나가던 물량을 한은이 받는 구조다
지금 보유량이 104.4톤이니 1년에 5%도 안 되게 늘리는 속도다
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월 말 기준 3.5%. 일본은 846톤을 갖고 있고 우리는 세계 40위권이다
즉 저점이라고 판단해서 지른 게 아니라, 너무 적었던 걸 천천히 메우는 쪽에 가깝다
한은도 중장기적으로 완만하게 사겠다고 했다
둘째, 달러가 아니라 원화로 산다
이게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다.
예전엔 해외 시장에서 달러로 금을 사왔다.
이번엔 국내 금 생산업체가 수출하려던 물량을 KRX 금시장에서 원화로 사들인다
쉽게 말해 달러를 안 쓴다는 뜻이다
금을 사려고 달러를 헐면 외환보유액이 줄고 환율도 흔들린다.
원화로 국내에서 사면 그 걱정이 없다
환율이 1,400원대인 요즘, 이 방식을 고른 데는 금값 전망보다 환율 사정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
7월 30일 기준 순금 한 돈이 69만 7천원이라고 했다.
KRX 금시장 1g 시세를 한 돈(3.75g)으로 환산한 값이다
8월 6일 기준 순금 한 돈을 사려면 85만 1천원인데, 같은 날 되팔면 72만 5천원이다
사자마자 12만 6천원이 사라진다. 약 15%다
여기에 부가세 10%와 세공비가 들어있다.
실물 금은 사는 순간 이미 그만큼을 밑지고 시작한다는 뜻이다
"금값 얼마"라고 할 때, 그건 대부분 내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
그래서 지금 뭘 해야 하나
1단계. 내 금이 어떤 형태인지부터 본다
장롱 속 돌반지나 예물이면 위의 12만원 구조가 이미 반영된 상태다.
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기엔 애초에 불리한 그릇이다
금 현물계좌나 금 ETF로 갖고 있다면 이 비용이 없어서 나눠 대응하기가 훨씬 가볍다
2단계. 이 돈을 언제 쓸지 정한다
1년 안에 쓸 돈이면 반등한 지금 일부 정리를 검토해볼 만하다
5년 이상 안 쓸 여윳돈이라면 오늘 굳이 손실을 확정할 이유가 없다
3단계. 움직이더라도 한 번에 움직이지 않는다
한은도 한 번에 안 산다. 완만하게 나눠 사겠다고 했다
13년간 쉬었다가 다시 사는 기관도 분할로 들어가는데, 개인이 한 번에 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지 않을까
그래도 조심할 게 있다
금리 얘기는 아직 안 끝났다
7월 29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3.50~3.75%로 동결했고, 그날 국제 금값은 1% 넘게 올랐다
그런데 표결 내용을 보면 12명 중 3명이 반대했다.
반대한 세 명은 전부 "내리자"가 아니라 "올리자"는 쪽이었다
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라 금리가 다시 오르면 제일 먼저 눌린다
중동 상황이 나빠져 유가가 뛰면 물가가 다시 올라가고, 인상 카드가 되살아날 수 있다
그러니 "한은이 샀다"를 매수 신호로 읽으면 안 된다.
떨어질 때 받아줄 큰 손이 하나 늘었다, 정도가 정확하다
기관이 13년 만에 바꾼 건 타이밍이 아니라 기준이었다
한은이 이번에 바꾼 건 "언제 살까"가 아니다.
"금을 얼마나 갖고 있을 것인가"라는 기준 자체를 바꾼 거다
나도 한 달 전에 안 팔기로 했을 때, 가격을 맞춘 게 아니라 기준을 정한 거였다
기준이 있으면 시세 창을 덜 열어보게 된다
여러분도 오늘은 금값부터 검색하지 말고, 내 금이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시길..
참고 자료
KBS 잇슈머니 《"13년 만에 금 사는 한은"…지금이 '저점 매수' 기회?》 (2026.8.5)
https://news.kbs.co.kr/news/pc/view/view.do?ncd=8628739
파이낸셜뉴스 《13년 만에 방향 튼 한은…"수출용 金 매입한다"》 (2026.8.3)
https://www.fnnews.com/news/202608031039273887
경향신문 《한은, 13년 만에 "금 삽니다···국내 시장에서 삽니다"》 (2026.8.3)
https://www.khan.co.kr/article/202608031800081
EBN 《한은, 13년 만에 금 산다…'국산 금' 원화로 장외 매입》 (2026.8.3)
https://www.ebn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718948
파이낸셜뉴스 《연준 금리 동결…매파 목소리 커지며 9월 주목》 (2026.7.30)
https://www.fnnews.com/news/202607300511493056
중앙이코노미뉴스 《금시세닷컴 금값, 8월 6일 순금 보합 한국표준금거래소와 시세 비교》 (2026.8.6)
https://www.joongange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538174
한국금거래소 — 오늘의 금시세
https://www.koreagoldx.co.kr/price/gold



